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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 플레이에서 네이버 웨일 다운로드당신은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사랑하는가. 치유해 주실 때만 뜨거워지는가. 응답이 올 때만 감사한가. 축복이 넘칠 때만 예배가 살아나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더 사랑해왔는지 모른다.
경건한 언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신랑이 아니라 선물을 원하는 신앙. 어거스틴은 이것을 가장 세련된 형태의 우상숭배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이 그랬다. 만나가 없으면 원망했고, 물이 없으면 불평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는 민감했지만 하나님 자체에는 무감각했다. 하나님의 손을 사랑했지만 하나님의 얼굴은 구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가장 뼈아픈 비극이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다른 사람의 병은 기도 한 번에 고쳐주시는 하나님이, 3년이 넘도록 나의 병은 외면하시는 것 같았다. 세운 교회를 내려놓게 하시고, 영주권 문턱에서 돌려보내시고, 암 환자의 몸으로 한국 땅을 밟게 하셨다. 울부짖어도 침묵하셨다. 그 긴 몸부림 끝에 주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성령의 전이다. 그런데 성령의 전을 더럽혔다. 회복하라." 그때 깨달았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치유가 아니었다. 선물이 아니라 신랑 자체를 갈망하는 신부의 마음이었다.
다윗은 달랐다. 왕이었던 그가 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4)
더 큰 왕국도, 더 많은 승리도, 더 오랜 건강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신부의 마음이다.
아가서의 신부는 고백한다.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아가 2:5)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 신랑을 향한 갈망이 너무 깊어, 그 갈망 자체가 아픔이 된 것이다. 이 거룩한 병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가. 선물이 없어도 신랑이 그리운 그 마음이 있는가.
지금 이 마지막 때, 신랑이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신다. 선물을 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신랑 자체가 오신 것이다. 그 문을 여는 자가 신부다. 그리고 신부의 사모함에 신랑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넘어오는구나." (아가 2:8)
선물이 없어도 신랑이 있으면 충분하다. 응답이 없어도 신랑의 곁이면 넉넉하다. 이것이 세상이 흔들릴수록 더 강렬하게 빛나는 신부의 신앙이다.
신랑을 사랑하는 자는 아무것도 없어도 충분하다. 신부는 신랑만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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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글을 읽고
반드시 살아날 영혼들이 있습니다!
천국지기
나는 주님의 비둘기같은 신부가 되었습니다 ~~~~~
영원토록 ~~ 주님만 사모 합니다 ~~~ 임하소서 임하소서 ~~~~~ ❤️
나의 사랑~ 나의 사랑~ 어여쁜 자야 일어나함께 가자 ~~~~ 아멘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