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 사랑의 3대 위대함과 아름다움
1. 나의 ‘가장 추악한 자리’를 덮어버린 위대함입니다 (긍휼)
성경이 말하는 긍휼(히브리어: 라하밈, 그리스어: 엘레오스)은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동정을 넘어, ‘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큰 죄를 짓고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질러도, 어머니의 태가 자식을 끊어내지 못하고 온몸으로 품어내듯 아파하는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 한국적 육신의 질병을 깨부숩니다: 세상은 내가 외모로, 학벌로 1등의 자격을 증명하지 못하면 가치가 상쇄됩니다.
- 하나님은 내가 예뻐서, 거룩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소망 없는 나를 성전 삼아 처소로 삼아주시려고,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찢어 죽이시기까지 내 모든 허물을 덮어버린 무조건적인 위대함입니다.
2. 결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낭비하는 사랑’의 아름다움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늘 조건을 따지고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네가 나에게 이만큼 해줬으니 나도 이만큼 사랑할게"라는 육신의 계산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얼굴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은 ‘독생자의 생명’과 ‘죄인인 나의 생명’을 1:1로 맞바꾸어 버린 대책 없는 낭비였습니다.
- 우주의 창조주께서 고작 흙으로 지어진 나 하나를 살리시겠다고 물과 피를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내셨습니다. 그것은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미친 사랑’이자, 우주 역사상 가장 눈부시고 아름다운 신랑의 로맨스입니다.
- 내면 처소에서 이 사랑의 영광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맛본 영혼은, 세상의 인정에 목말라하던 갈증이 순식간에 해갈됩니다. "온 우주의 왕이 나를 이토록 아름답게 보시고 목숨을 던지셨는데, 세상의 평가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는 영적 자존감이 뼈에 사무치게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3. 영원히 나를 포기하지 않는 ‘추적하는 사랑’의 신실함입니다
이 큰 사랑의 가장 위대한 정점은, 내가 연약하여 또다시 육신에 속아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순간에도 절대 나를 포기하거나 취소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 우리가 성령의 전으로 계신 주님을 잊어버리고 세상 도파민을 좇아 방황할 때에도, 주님은 내 안방 처소에서 피 묻은 손을 들고 내가 돌이키기만을 기다리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로마서 8:26).
- 내가 하나님을 놓을지언정,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은 지옥 끝까지라도 추적하여 마침내 나를 그리스도 안(In Christ)이라는 완벽한 피난처로 끄집어 들이고야 마는 집요하고 신실한 사랑입니다.
진실로 우리가 머물러야 할 곳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임재하신 거룩한처소이며, 그 십자가는 어찌 그리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지 이루 형언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형벌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완전히 계시된 영광의 보좌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희생까지 감수하셨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그 십자가 앞에 머물 때 우리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경외감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은혜의 안식처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거룩한 성소입니다.